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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初演) / 강성은

극장 앞에서 우리는 서성였다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게 왔으므로 극장 앞에서 우리는 서성였다 하나는 불안한 듯 계속해서 벽을 찼고 하나는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겨울의 황량한 바람이 우리의 내부를 통과해 간다 더 빨리 왔더라면 더 늦게 왔더라면 이런 어리석은 대화 무의미한 대화 우리는 입을 다물고 서로의 서로의 뒷모습만 바라본다 이런 어리석은 장면 무의미한 장면 우리는 극장 앞에서 서성였다 초연은 아니지만 초연 같았다 눈보라가 퍼붓자 사람들을 따라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도 우리는 서성였다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게 왔으므로 끝나 있거나 시작하기 전이므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강성은, 『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 지성사, 2013, p.33.

서성거림, 이만큼 우리 삶을 잘 표현해주는 단어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확신이 없을 때, 확신을 가졌다고 해도, 그 확신을 완전히 확신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결론의 입구에서 서성거립니다. 최대한 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풀 수 없는 공식을 잊어버린 수학문제 같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그 서성거림은 고민이었습니다. 결코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하는.

‘고민’과 아주 유사한 개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색’입니다. 두 개의 개념, 모두 관념적인 것입니다. 우리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또 하나는 머리가 가벼워집니다. 하나는 毒이 되고 하나는 藥이 됩니다.

고민과 사색의 차이. 고민을 사색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까. 모든 고민을 사색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고민의 일정 부분은 사색으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화자의 서성거림, 저 행위는 어디까지나 고민입니다. 화자는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게 극장에 도착했습니다. 계속햇 화자는 서성입니다. 고민합니다. 내가 왜 일찍 왔을까. 아니면 왜 내가 이렇게 늦게 왔을까. 눈이 내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따라 극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안에서도 화자는 서성거립니다. 그리고 밖에서 했던 고민을 안에서도 합니다. 안과 밖은 고민으로 연결됩니다. 외부와 내부는 하나입니다.

사색할 수 있음에도 고민하는 것입니까. 네, 저는 그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는 고민하는 법만을 배웠지 사색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우리 고민의 결과는 4지 또는 5지 선다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미 정답이 정해진 고민. 어쩌면 저 결론이 우리의 머리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삶은 다양하고, 구분할 수 없는 것인데, 저 서성거림의 목적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결론만 바라보고 있으니.

극장에 왔으니 영화를 봐야 한다고 누가 정한 것이니까. 아무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서성거림이 목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천공항에 간다고, 비행기를 타고 꼭 해외로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여행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공항에 오기도 했을 것이고, 누구는 공항이 일터일 수도 있습니다. 단 하나의 지점만 바라보면, 삶이 왜곡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삶의 다양성, 저는 그것이 삶이 가진 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하나의 방향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이고, 일자리에 대한 생각도 그러합니다. SKY에 대한 쏠림, 대기업 선호 현상은 충분히 이유는 있지만, 그 종착역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실패한 것입니까. 그 어느 것 하나 가지지 못한 저는 실패한 삶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 삶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충분히 만족한 삶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제 확고한 믿음입니다.

2019년 2월 7일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출처 : 주영헌 시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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